scenery 130.3x89.4cm acrylic on canvas 2019 라자스탄에서 인더스까지 1993. 5.21-5.30 갤러리 아미고영일의 근작전近作展에 부쳐 윤진섭/ 미술평론가 1974년, 서울교대를 졸업함과 동시에 때마침 창립을 본 '바실회' 그룹전에 참가함으로써 ,고영일은 고된 화업의 길로 들었다. 햇수로치면 19년전의 일이다. 그는, 미술에 뜻을 둔 대부분의 교대출신 작가들이 그렇듯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으로 작품활동을 하지 않으며 안되었는데, 그 화업에의 여정이란 끈기와 인내를 요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한국 미술계의 상황에서 볼 때, 그가 서울교대 동문들의 모임인 '바실회'를 중심으로 작품발표를 하였다든가 대한민국 미술대전이나 창작미협 공모전을 통해 화업에의 꿈을 성취해 왔다는 사실은 그의 작품 이해에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 준다. 그것은 어쩌면 한국 화단 상황이 몇몇의 유명 미술대학출신 작가들에의 해 주도돼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그 주변부를 이루는 작가들이 어떤 방향을 선택하고, 작가로 성장하기 위하여 어떤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었느냐 하는 질문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고영일이 화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던 70년대 중반의 상황은 그에게 있어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음이 틀림없다. 즉, 실험의 열기가 드높았고, 그 열기가 미술계의 중심부에 의해 독점되다시피 했을 대, 주변층을 이루는 여타의 작가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훨씬 좁을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현대미술을 선택한 많은 수의 작가들은 입지적 지반이 취약했기 때문에 격렬한 실험보다는 당시 공모전의 한 부문을 이루고 있던 추상회화쪽에 더욱 경사?돼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여러가지 복합적인 정황과 작가 자신의 미적 취향, 그리고 온건하고 조용한 성품이 어울어져 고영일은 서정적 추상에 관심을 솓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선택했던 이왁타은 방향은 우리밋루사상 격도익라고 할 수 있는 80년대를 거치는 와중에도 흔들림 없이 윶ㅈ돼 왔다. 그것은 과연 어떠한 회화적 물음을 묻는 길이었는가? 고영일은 이제까지 토산 세차례의 개인전을 가졌다 .첫번재는 1978년 견지화랑에서의 개인전, 두번째는 1983년의 관훈미술관, 세번째는 미술회관에서의 개인전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균질회화(All-over Painting)적인 특징을 드러냈던 제1회 개인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서정적 느낌이 짙은 추상화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서체적인 형태의 기호와 상징들로 가득 채웠던 제1회 개인전의 출품작 <Prapalat로 부터>를 제외하고, 그 이후에 발표된 <가나안(canaan)>연작은 붓질과 색채와의 관계, 혹은 이 양자사이의 미묘한 뉘앙스를 십분 고려한 작업으로 일관되었던 것이다.구체적인 형태를 노출시키지 않고 전개되는 그의 <가나안(canaan)>연작은 내밀한 의식의 토로吐露와도 같은 작업이다. 선과 색 만료의 물질괌과 행위, 기호와 공간의 문제를 회화상의 과제로 삼아 일련의 탐색을 시도해 온 고영일은 서정적 울림으로 가득찬 화면을 창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미술회관에서의 세번째 개인전 출품작들은 그간의 그의 노력이 잘 집약된 수작秀作들이다.제3회 개인전 출품작인 <가나안(canaan)>은 검은색이 풍겨주는 여운이 잘 표출된 작품들이다. 화면의 전체를뒤덮다시피한 검은색의 색역色域이 풍기는 풍부한 울림은 ㄴ색료를 빨아들일 듯한 표면의 어둠으로부터 나온다.침잠과 그에 상응하는 정신적 깊이감, 색료의 정신화 精神化 따위가 이 무렵 작가의 관심사가 아니었나 싶은데, 그는 검은 색의 과감한 포치를 통하여 이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점에 대한 고영일의 회화적 책략은 우선 그 이전에 시도했던, 유채색의 사용과 삼각형, 또는 원으로 대변되는 기하학적 구성을 화면으로부터 배제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되었다. 즉 세모꼴이나 원의 중첩과 색의 계조(gradation), 혹은 드로잉의 자취 따위를 점진적으로 정리해 나가면서, 그 자리를 검은색 색역의 과감한 포치나 자유분방한 필치의 선명한 대비로 대치해 나갔던 것이다. 회색조나 검정색조의 금욕적인 회화공간은 이 무렵의 작업경향으로 특징 지워진다.그림이 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려는 듯 우리의 곁을 훌쩍 떠났던 고영일이 인도유학 중 스케치 묶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데칸고원과 인더스강, 히말라야 산록과 라자스탄 사막 등 동양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그 곳은 그가 이제까지 추구해 온 '관념속으로의 여행'을 근본부터 다시 성찰하게 한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즉 작가자신의 영용에 의하면 '순수조형에 대한 탐구'가 근본적으로 재고되지 않으면 안될 지점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고영일의 근작은 따라서 '순수조형의 탐구'라고 이름ㄹ붙힐 수 있는, 화력 상의 전반부적 성과에 대한 반란과 새로운 영역으로의 출발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기호와 상징의 추상회화가 갖는 순수조형의 세계로부터 일탈이자, 구체적인 대상세계의 이미지를 좇는 새로운 작업의 고지告知일수도 있다. 라자스탄 사막의 여명, 황사바람이 부는 데칸고원의 황량한 분위기, 동양문화의 시원 始原을 간직한 문화유적 등, 여행을 통해 받았던 강렬한 이미지들이 시각언어로 번역돼 있는 그의 금번 작업은 고영일 회화의 새로운 변신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landscape 162.2x130.3cm acrylic on canvas 2018